
“선생님 전문과목은 정신과인가요, 입원의학인가요?”
병동에서 처음 만나는 입원 환자나 보호자, 다른 의료진에게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7년 차이자, 입원전담 전문의 5년 차로 일하고 있다. 근무 연차로만 보면 제법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조합 꽤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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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으로 말하는 마음의 병, 마음으로 말하는 몸의 병 | 황현숙 | 2026-01-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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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말하는 마음의 병, 마음으로 말하는 몸의 병[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 4입원전담의 제도에서는 의사의 전문과목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내과나 외과, 가정의학과 출신 의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보건복지부 발표를 보면, 정신과 전문의는 3년 전 두 명으로 늘었다가, 지금은 다시 한 명으로 줄었다. 남아 있는 그 한 명이 바로 나, 전국 유일의 존재다. (혹시라도 통계 발표 후에 입원전담의 근무를 시작하신 정신과 선생님이 계시다면 사과드린다.)
“그럼 우리는 전국의 입원환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정신과 선생님께 몸과 마음을 맡기고 아주 특별한 돌봄을 받고 있는 셈이네요.” 다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에 대해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로 정의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100% 공감 가는 정의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몸과 마음이 서로 얽히고설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가 하면 어떨 때는 몸의 병 같은데 마음의 병이었다든지, 마음의 병인 줄 알았는데 몸의 병이었다든지 할 때가 많다. ![]() 한 번은 50대 여성 환자가 심한 우울감과 무기력으로 입원했다. 이전부터 우울증을 앓아왔던 환자였지만, 이번에는 전형적인 우울증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갑자기 치매환자처럼 여기가 어딘지, 오늘이 며칠인지 대답을 못하다가도 다음 날에는 다시 멀쩡해졌다. 우울증 환자들도 증상이 심하면 무조건 ‘모른다’며 대답을 회피하는 가성치매가 있을 수 있지만, 이 환자는 병실에서 몇 년 전 돌아가신 남편이 보인다며 소리를 지르는 증상까지 보였다.
‘이건 단순한 갱년기 우울증이 아니다. 뭔가 정신과를 넘어서는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어.’ 곧바로 환자를 진찰하고 혈액 검사와 뇌단층촬영(CT) 검사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CT 영상을 열어보니 뇌하수체에 1.5cm 크기의 종양이 보이는 게 아닌가. 혈액 검사에서도 전해질 이상 소견이 나타났다. 환자가 힘들어 한 원인은 우울증이 아니라 뇌종양과 그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이었다. 이미 섬망 증상이 진행되어 환자 상태가 빠르게 나빠질 것 같았다. 즉시 신경외과와 내분비내과에 협의 진료를 요청하여 약물을 조절하고 종양 제거 수술을 진행했다. 다행히 수술적 치료로 완치가 되는 뇌하수체 선종이었다. 마음이 원인인 줄 알았던 우울 증상과 무기력이 눈에 띄게 호전되고 환자는 수술 후 3일 만에 밝은 표정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10여 년 전 내가 정신과를 택한 이유는 몸의 병보다는 마음의 병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알기 힘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일이 무엇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환자의 몸보다는 마음의 증상을 우선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는 훈련에 집중했다.
물론 정신과학 교과서에서는 정신 증상을 탐색하기 전에 신체적인 질병이 있는지에 대한 감별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입원전담의 일을 하기 전, 나 자신 역시 신체적인 문제에 둔감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병원에서들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정신과 병동에서 환자가 숨이 넘어가면, 정신과 의사가 외친단다. “빨리 의사 불러와!” 물론 환자가 위독한 상황에 당황하는 정신과 의사를 놀리는 농담이다. 반대로, 내과 병동에서 “정신과 헬프 좀 부탁드립니다”라는 연락이 오면 ‘정신과 출신 입원전담의의 희소성’이 빛을 발한다. 다른 과 입원 환자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정신과적 문제는 불안이나 우울, 섬망이다.
입원 전 아무 문제가 없었던 사람들도 어수선한 병실에 누워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수많은 약물을 투여받고 잠을 잘 못자면, 극도로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갑자기 우울해지고 안절부절 못하며, 간병인과 다툼이 잦아지고, 결국 정신 증상까지 나타난다. 얼마 전 종양내과에서 콜이 왔다.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갑자기 “병원이 나를 가두고 감시한다”며 치료를 거부하고, 보호자와 의료진에게 욕을 하며 폭력을 휘두르려 한다는 것이다. 환자를 독립된 공간으로 모시고 한 시간가량 면담했다. 치료가 잘 진행되지 않는 답답함, 통증, 암에 대한 불안감, 보호자와의 갈등으로 인한 고립감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그 끝에서 우울감과 정신 증상이 나타난 상태였다. 상황에 대한 공감을 전하고, 필요한 정신과적 치료를 설명한 뒤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며칠 후 환자의 태도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고, 다시 치료에 협조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입원 환자들에게 ‘정신건강의학과’라는 이름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정신과 의사가 진찰을 가면 환자들이 놀라거나 불편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는 증상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불안해지고, 무기력해지고, 흔들린다. 정신과 병동 환자들뿐 아니라, 병원에 입원한 수많은 환자들 역시 마음의 돌봄이 필요한 순간을 겪는다. 몸과 마음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한 사람의 환자를 통째로 바라보는 의사가 될 수는 없을까. 입원환자를 전문으로 보아온 지 5년. 나는 매일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정신과 환자이니 정신 증상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중요한 몸의 신호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과대학 시절 공부했던 교과서를 다시 꺼내 읽고, 내과, 외과 가이드라인을 자주 확인한다. 정신과 이상의 방대한 양을 익히다보니 때때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어쩌랴, 나는 대한민국 유일의 정신과 출신 입원전담의가 아닌가. 아직은 드문 길이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는 길이라 믿고 싶다.
박경미 교수 대한입원의학회 학술위원장 (용인세브란스병원 입원의학과 임상조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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